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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신문 읽기의 혁명

by Augustine™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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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손석춘



"신문을 읽지 않으면서부터 실로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다. 사람들은 남이 하는 일들에만 관심을 갖고 자신의 중요한 의무는 아주 쉽게 잊는다."

작가는 괴테가 신문 읽기에 대한 혹평을 인용하며, 정보가 넘치는 정보화 시대에 정보(신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머리말에서 문제로 꺼내고 있다.


우리는 신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일까? 또는 신문이 주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일까? 신문이 주는 정보는 Fact만 전달하는 것인지? 혹은 정보를 신문사의 주관(취재기자, 편집기자)에 따라 가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인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현대의 신문은 스스로 권력화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여론을 신문사의 주관대로 조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들이 신문을 바로 봐야 할 이유이다. 왜 같은 기사를 보수의 대표(어쩌면 수구꼴통의 대표 찌라시) 신문사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전하는 기사와 진보로 대표되는 경향, 한겨례 신문사가 전하는 기사가 틀릴까? (그렇다고 딱히 한겨례, 경향이 진실을 전한다고 할 수는 없다. 가끔 기레기 짓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한겨레, 경향이니...)

신문은 순수한 의도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가지도록 오염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문을 비평의 시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보수의 시대에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 세대와 얘기를 하려면, 생각의 차이로 인해 의견이 충돌한다. 보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어쩔 때는 보수일 수도 있다. 다만, 일부 신문의 기사를 비평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점이 문제다. 심각한 점은 젊고, 나름 고학력인 사람들도 기사를 비평 없이 받아들이는 점이다. 

신문의 편집 3요소인 기사, 사진, 표제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흑심을 가지고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1면에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나오는 표제는 독자의 그날 정보에 대한 생각을 각인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아래 그림은 4개의 신문이 전하는 2002년 9월 18일자의 1면 기사다. 표제를 주목해서 보자.(일부 독자는 표제로 기사를 읽기도 하고, 또는 표제만으로 기사의 내용을 판단한다.)

당시 이슈가 2002년 9월 17일에 있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1면 머리기사로 편집했다.



네 신문을 각각 받아본 독자들은 '조-일 정상회담'이라는 사실(fact)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다르게 볼 수 밖에 없다. 한겨례가 두 나라 사이의 첫 정상회담과 수교 교섭에 비중을 둔 반면,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김정일 위원장의 부정적 모습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문은 독자들에게 절대로 순수한 의도로 접근하지 않는다. 표제와 사진, 기사 뒤에 감추어진 흑심을 파악해야 된다. 기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면 차라리 신문을 보지 마라.

작가는 머리말 말미에 "[신문 읽기의 혁명]이 그 소임을 다해 아무도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오면 그 떄 이 책은 서슴없이 폐기될 터이다. "라고 말하며, 이 책이 써여진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당연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신문이 주는 위험성을 모르는 분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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